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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발걸음




해가 질 무렵, 늦은 시간까지 빛의 전사는 고등급 연금제를 제조하고 있었다. 아발라시아 구름바다에서 어렵게 캐온 클라리세이지까지 갈아서 넣자 드디어 몇 방울의 에테르가 포션에 담겨져 나왔다. 장장 5시간 만에 완성된 포션이었지만 만족스러운 결과인듯 수심이 가득했던 빛의 전사의 표정이 일순 밝아졌다.


빛의 전사는 증류기와 포션을 들고 아발라시아 구름바다의 한 켠에 누워있는 인영에게 급히 다가갔다. 죽은 듯이 나무에 기대 누워 있는 그는 괴로운 듯 신음하고 있었다. 빛의 전사의 인기척에 곧 금안의 눈동자가 뜨였다. 빛의 전사는 얼굴을 찌푸리며 무릎을 꿇어 그를 살피며 물었다.


"버틸 수 있겠어?"


프레이는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그의 몸에 방금 만든 에테르를 쏟아 붓자 그의 안색이 조금 좋아졌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몇 초 후 증발하듯 사라지는 에테르에 빛의 전사의 표정은 다시 어두워져 갔다.


"……그만 두세요."


프레이가 힘없이 중얼거렸다. 프레이는 그가 이 약제를 만드는데에 얼마나 많은 시간과 돈을 들였는지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 시간과 노력에 비해 자신의 몸은 나아지지 않았다. 오히려 나빠지고 있었다. 


죽은 몸에 가깝기 때문일까. 그와 하나가 된 후, 처음에는 티가 나지 않았지만 자신의 존재로 인해 빛의 전사의 에테르는 점차 빠르게 소모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상태가 지속되자, 그의 몸상태마저 점점 좋아지지 않고 있었다. 


처음에 빛의 전사가 현기증에 비틀거려 앓아 누웠을 때 그것이 그저 가벼운 감기인 줄 알았지만 전투를 마치고 다량의 힘을 소모하고 난 날에는 각혈까지 해 사태가 심각하다는 것을 뒤늦게야 알아챈 프레이였다. 얼마나 심각한지, 바닥에 쓰러져 고통을 호소하는 빛의 전사의 모습에 놀라 주변의 시선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소울 크리스탈에서 튀어나와 그를 부축했을 정도였다. 빛의 전사는 괜찮다고 말했지만 프레이는 알고 있었다. 자신이 그를 죽게 만들고 있음을.


그 후로 프레이는 자신의 힘이 필요한 경우를 제외하고 그와 분리해 존재하겠다고 자처했다. 그러나 '프레이의 몸'을 지탱할 수 있을 정도의 에테르 역시 막대한 양이 필요해서, 결국 똑같은 결과를 낳고 있었다.


"방법이 있을 거야. 좀 더 효력이 있는 에테르를 구하면……. 아니, 일단 내 에테르부터 줄게."


빛의 전사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자신의 에테르를 프레이에게 나누어 줄 때마다 두통이 잇따랐지만 그는 개의치 않았다.


"저어, 영웅님? 영웅님이시죠?"


빛의 전사가 프레이의 안색을 살피며 행동을 하려고 할 때, 누군가가 그를 알아보고 다가왔다. 빛의 전사가 고개를 돌리자 그녀는 몹시 안도하며 그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오, 할로네시여. 영웅님, 제발 도와주세요. 정찰을 나간 부대가 지금껏 돌아오지 못하고 있는데 분명 무슨 일이 생긴 게 분명해요. 전 이곳을 떠날 수 없는데 잠깐이나마 확인해주실 수 있을까요?"


빛의 전사는 얼굴을 잠깐 찌푸리곤 고개를 돌려 지친 기색의 프레이를 보았다. 하필 이런 때에……. 


"가요…. 저는 괜찮으니까……."

"하지만……."

"하하, 별일이네요……. 당신이 저를 먼저 생각해주실 때도 있고……."


프레이가 영광이라는 듯 말했다. 빛의 전사는 고개를 저었지만 프레이는 그를 만류했다.


"아직…… 버틸 수 있습니다……. 가요."


프레이의 눈이 감기고, 그의 몸에서 검은 형태의 무언가가 빠져 나왔다. 빛의 전사는 여전히 못마땅한 표정이었지만 소울 크리스탈로 흡수되어지는 그것을 막을 방법은 없었다.


"……거기가 어딥니까?"


행선지를 묻는 빛의 전사의 물음에는 무게감이 실려 있었다.



***


"하앗-!"


간신히 적을 쓰러뜨린 빛의 전사는 거친 호흡을 내뱉으며 검을 집어 넣었다. 전투에 돌입할 때마다 자신의 체력이 예전과 같지 않음을 확연히 느낀다.


그는 품안의 소울 크리스탈을 꺼냈다. 자신의 에테르도 에테르지만 암흑 소울 크리스탈의 빛이 점점 희미해져갔다. 가끔은 소울 크리스탈이 아닌 그저 조약돌처럼으로만 보여 덜컥 심장이 멈추는 것 같은 기분이 들 때도 있었다. 그는 입술을 깨물며 침통하게 눈을 감았다가 떴다. 그리고 결심한 듯 프레이의 몸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빛의 전사는 축 늘어져 있는 프레이의 몸을 부축하며 아발라시아 구름바다의 한 곳에 도착했다. 빛의 전사가 소울 크리스탈을 꺼내 프레이의 몸 가까이에 대자 검은 물결이 치며 프레이의 몸에 혼이 흡수 되었다. 이윽고 힘겹게 눈을 뜬 프레이는 눈앞에 빛의 전사가 보이자 간신히 미소를 지었다. 빛의 전사는 무릎을 꿇어 프레이의 두 눈동자를 바라 보았다. 


"……?"

"아, 이 모습은 '네'가 아니지."


빛의 전사는 프레이의 손을 잡고 에테르를 흘려 보냈다. 프레이는 움찔하고 빛의 전사를 보다가 머뭇거리며 말했다.


"무슨 생각이예요……."
"……."

"……여기서 안 나갈 겁니다."


프레이가 고집스럽게 말했지만 빛의 전사는 행동을 멈추지 않았다. 그제야 프레이는 다급하게 지금의 몸을 버리고 본래의 모습으로 이끌려 나왔다. 빛의 전사와 닮은, 아니, 똑같은 모습의 형체를 한 그는 빛의 전사의 행동을 막아보려는 듯 그의 손목을 잡으며 말했다.


"지금 뭐하는……? 그만, 그만 해. 몸에 무리가 가잖아!"

"……알고 있어."

"무슨……. 잠깐, 잠깐만. 뭘 저지르고 있는 거야……!"


필요 이상의 에테르가 환영에게 들어차자, 그가 어쩔 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빛의 전사를 보았다. 대체 그가 무슨 생각을 하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이대로 가다간 분명 죽는다는 것을 알고 있을 텐데 그는 무모한 짓을 벌이고 있었다. 


'아니……. 죽는다고…….'


거기까지 생각이 닿았을 때, 환영은 설마하는 표정으로 빛의 전사를 보았다. 그리고 자신의 예상이 맞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무슨 짓이야. ……하지 말라고 했어. 제발. 하지 마……."


환영은 할 수 있으면 검이라도 들어 그를 말리고 싶었지만 이미 자신의 몸 상태는 엉망이었다. 숨을 들이쉬고 내쉬는 것이 고작인 몸으로 그를 막을 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 그리고 빛의 전사의 입술 사이로 피가 흐르는 것이 보였다. 환영은 아연실색하며 그의 손목을 꽉 쥐었다.


"안 돼, 안 돼……. 뭘 하고 있는 거야……. 제발, 제발 그만 둬……."

"정말…… 소중한 것을 지키자고 했지."


빛의 전사가 고개를 들어 울상을 하고 있는 환영을 보았다.


"그러니까…… 널 버리고 갈 수 없어."

"……."


환영은 충격에 빠진 눈으로 빛의 전사를 바라 보았다. 빛의 전사는 한계에 다다랐는지 에테르를 공급하는 것을 멈추고 그의 옆에 천천히 앉았다. 호흡은 거칠었지만 빛의 전사는 만족스럽다는 표정으로 그에게 기대었다. 환영은 여전히 울상인 채로 자신의 주인을 보았다. 지키겠다고 했는데. 자신이 죽는 한이 있어도 그를 지키겠다고 했는데……. 


"그런 표정 마……. 잠깐 자는 건데……."

"……."

"그러니까 다음엔……. 더 멀리, 더 많이…… 여행을 가보자……. 술도 마셔 보고……. 추운 곳을 떠나 경치 좋은 곳에도 가보고……. 그리고…… 목소리를 들려줘……. 네가 누군지…… 이번에야 말로 단번에 맞출 테니까……."


빛의 전사는 미소를 그리며 눈을 감았다. 환영은 자신의 몸에 기껏 채워진 에테르가 공기 중으로 사라져 가고 있음을 느꼈지만, 잠시라도 그의 온기를 놓치지 않으려는 듯 빛의 전사의 손을 꽉 쥐며 애달프게 웃었다.


"정말 당신이라는 사람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