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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히카프레


제 아무리 자기 자신이라고 해도, 빛의 전사를 막을 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 과거에도, 그리고 지금도. 


프레이의 말이 닿지 않았던 그때도 그랬지만, 말이 닿는다고 해서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그는 빛의 전사에게 죽을 수도 있다는 경고를 몇 번이나 주었지만 빛의 전사는 개의치 않고 나아갔다. 죽음이라는 것에 대한 공포따위는 전혀 없다는 듯. 


어쩔 수 없었다. 그런 공포는 프레이, 자기 자신만이 똑똑히 알고 있으니까. 그의 고통과 두려움따위를 자신이 감내하게 한 결과가 이것이라면 그는 더이상 빛의 전사를 말릴 수 없었다. 당장 야만신에게 심장이 뚫려 죽는다해도 그는 마지막까지 검을 치켜들 것이다. 


"이제 도망칠 수도 없게 됐어."


프레이는 그렇게 말하며 그가 두려움을 집어 먹고 도망이라도 치길 바랐지만 그는 오히려 결의에 다져진 눈으로 불타는 땅을 응시했다. 도망칠 생각은 전혀 가지고 있지 않았다는 듯이. 그의 손에 달려있는 국가가 몇 인가. 또 그의 손에 달려있는 미래는 어떠한가. 프레이는 고개를 돌려 저 편에서 흔들리고 있는 세 나라의 국기를 보았다. 결국 또 그때처럼 그를 이렇게 벼랑 끝에 내모는 에오르제아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리고 그런 건 신경도 쓰지 않는 그가 미련스러워 보였다. 


"준비 됐어?"


빛의 전사는 검을 바로 쥐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 끝에 죽음이 기다리고 있을지, 혹은 다른 이야기가 기다리고 있을지 아무도 모른다. 어쩌면 그를 보는 이 모습이 마지막이 될 수도 있다. 만일 그렇게 된다고 한들, 그 고통마저도 자신이 품으리라. 프레이가 다짐하며 그의 손 위에 손을 얹으며 말했다.


"무슨 일이 일어나든지 난……. 네 힘이 되어줄 거야."


빛의 전사는 그의 말을 듣고 식 웃었다. 그의 자신감에 찬 미소에 프레이는 어쩔 수 없이 그에게 웃어주며 그의 검에 박힌 소울 크리스탈에 녹아 들어갔다. 



***



눈앞의 적이 어떤 기술을 쓸 지 알면서도 몸의 반응은 점점 둔화 되었다. 무릎이 꺾일 뻔한 것을 참아내며 고개를 치켜 올렸다. 피에 젖어 눈앞의 적이 흐릿하게 보였다. 지속적인 케알이 몸을 채우고 있지만 깨진 독마냥 체력이 증발되어 사라져갔다.


"더이상 버틸 수가 없어!"


동료의 소리 지름에 이를 악물고 검을 치켜 들었지만 역부족이었다. 상대는 너무나도 강했다. 초월하는 힘으로도 어쩔 수 없는 강한 상대에 돌파구를 찾지 못하고 있었다. 들어주기 힘든 야만신의 비명 소리가 고막을 강타하며 이윽고 위협적인 발톱이 내려쳐졌다. 


"큭."


의식의 끈을 놓지 않으려 애쓰며 대검을 바닥에 내리 꽂아 꺾여지려는 무릎을 일으켜 세웠다. 


"위험해!"


누군가가 비명을 내질렀다. 몸에 부딪혀지는 강력한 타격과 함께 이명 소리가 뇌를 울렸다. 급격히 몸이 무거워짐을 느끼며 눈을 뜨려고 애썼으나 역부족이었다. 


'여기까지인가. 안 돼…. 내가 죽어서는….'


그렇게 아득해지는 의식 속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어디선가 들렸다.


"-, --, 들려? 난 네 곁에 있어. 난 결코 널 죽게 내버려두지 않아."



***



프레이는 눈을 뜨자마자 어마어마한 고통을 몸으로 받아냈다그러나 이런 고통 쯤은 익숙하다는 듯 고통의 신음조차 내뱉지 않았다. 그는 입안에 고인 피를 내뱉고선, 그를 완전한 죽음에 이르게 하려는 반복되는 야만신의 강력한 공격을 받아 넘겼다. 이를 악물며 빛의 전사의 온기가 아직 남아있는 검을 들어 야만신을 베고 또 베었다. 동시에 프레이는 몸안의 에테르가 빠른 속도로 소모되고 있음을 느끼고 미간을 찌푸렸다. 아직 더 버텨야만 했다. 눈앞의 야만신도 한계에 다다른 듯 높이 솟아올라 최후의 일격을 가하는 하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앞으로 5….'


프레이가 속으로 남은 시간을 가늠했다. 1초, 1초가 한 시간처럼 느껴졌다. 벌써 시간이 얼마 없었다. 에테르가 바닥나 의식이 사라지더라도 저 최후의 공격 만은 '자신'이 막아야 했다.


"굉장해. 저 공격을 버티고 있어."

"정신 차려! 그가 죽으면 우리 모두 전멸이야!"

"알고 있어! 지금이야!"

"거룩한 축복!"


정신이 아득해져 갈 때, 몸안에 들어차는 막대한 에테르의 양에 안심하며 최후의 일격을 가했다. 


"말도 안 돼. 이런 힘이 어떻게…! 끄아아악!"


결국, 고통어린 비명을 내지르며 사라지는 야만신을 보고 프레이는 기운 없이 미소를 지었다. 자신이 지켜야 할 유일한 사람. 적어도 그의 목숨은 지켜낸 셈이다. 


"우리가 결국 해냈어."


프레이가 중얼거렸다. 그러나 미소도 잠시, 몸안의 에테르가 바닥나 더는 그의 몸을 지탱할 수 없어졌다. 프레이는 뜻모를 공포를 느끼며 눈을 감았다. 이렇게 사라지는 걸까. 아니면, 그의 마음 속 어둠으로 돌아가는 걸까. 결국 해답을 구하지 못한 채 그는 의식을 잃었다.



***


끝없는 어둠 속. 프레이에게는 익숙한 곳이었지만, 자신을 받쳐 안고 있는 빛의 전사의 모습은 영 익숙치 않았다. 아니, 애시당초 이 어둠 속에 그가 있는 것은 이례적인 일이었다. 그의 본체가 의식을 잃고 있는 중이거나, 자신과 교감을 하고 있거나. 후자는 아닐 테니, 프레이는 그가 무슨 일을 당한 건가 싶어 급히 몸을 일으켰지만 빛의 전사는 그를 만류했다.


"여긴 어떻게……?"

"진정해. 힘을 너무 많이 써서 쉬고 있는 중이니까."


프레이는 그제서야 납득한 듯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빛의 전사는 그런 프레이를 바라 보다가 나직이 말을 꺼냈다.


"고마워."
"……?"
"네가 마지막에 나와주었던 거 같아서. 난 의식이 없었으니까."

"이번엔 정말로 위험했다고…."


프레이는 한숨을 푹 내쉬며 원망하듯이 그를 보았지만, 그는 사람 좋은 미소를 짓고 있을 뿐이었다. 정말 사람 속도 몰라 주고.


"……그래, 어디서부터 여행할래, 프레이?"

"……여행?"

"림사 로민사 근처에 좋은 해변이 있던데. 아니면 '버스카론 맘대로'에서 마음껏 마셔도 좋고. 울다하는 별 보기에도 좋은 도시니까 거기도 가보자."


프레이는 물끄러미 빛의 전사를 바라 보았다. 무슨 바람이 불어서…….


"응?"
"……어디든지. 너와 함께라면."


프레이가 뺨을 붉히며 중얼거렸다. 대신 맞아준 대가가 이런 것이라면 수십 번이라도 더 받아낼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빛의 전사는 그 속내를 알아차린 듯 웃어버렸지만 프레이는 모른 척 했다.